블로그 · 2026-05-08

셀프 인터뷰 — 왜 SaaS 대신 마이크로 도구를 만드는가

본업·사이드·가족·돈·번아웃 — 5가지 주제로 1인 개발자 자신을 인터뷰한 기록.

형식 안내. 이 글은 운영자가 운영자 자신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썼습니다. Q 는 가상 인터뷰어, A 는 운영자 본인. 일부러 미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년 동안 119개의 마이크로 SaaS 도구를 굴리면서, 인터뷰 요청이 몇 번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본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에 한 번도 답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답을 적어봤습니다.

주제 1 — 본업과의 관계

Q.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본업은 어떤 일인가요?

A. AWS 와 백엔드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회사 일과 사이드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한쪽에서 배운 게 다른 쪽에 곧장 흘러갑니다. 회사에서 만지는 인프라 패턴이 마이크로 사이트들에 그대로 적용되고, 마이크로 사이트들에서 깨달은 자동화·표준화 감각이 회사 업무 품질을 올려줘요. 이 양방향 흐름이 깨지면 둘 다 정체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본업이 있는데 119개를 만들 시간이 어떻게 나오나요?

A. 시간이 많이 나는 게 아니라, 한 사이트당 시간이 적게 들도록 만든 거에 가깝습니다. 인프라가 표준화되어 있으면 새 사이트 한 개에 평균 4~6시간이면 됩니다. 그 시간을 평일 출근 전 1시간, 퇴근 후 1~2시간, 주말 오전 2~3시간으로 나누면 1주일에 1~2개씩 굴러갑니다. 그렇게 1년이면 100개 가까이 됩니다. 핵심은 "사이트당 6시간이 1주일에 한 번씩 잡힌다" 가 아니라 "사이트당 6시간이 작은 조각으로 분할 가능한 구조" 라는 점입니다.

Q. 본업과 사이드가 충돌한 적은요?

A. 직접 충돌은 거의 없어요. 회사가 정한 사이드 프로젝트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회사 자원을 사이드에 쓰지 않는 선만 명확히 합니다. 다만 "에너지" 관점에서는 충돌해요. 회사에서 큰 트러블슈팅을 하루 종일 한 날에는 사이드 코드는 한 줄도 못 써요. 그 점은 받아들이고, 그날은 그냥 쉽니다. 매일 한다는 환상이 가장 위험한 환상이라는 걸 1년차에 일찍 알게 된 게 다행이었습니다.

주제 2 — 왜 SaaS 가 아니라 마이크로 도구인가

Q. 보통 1인 개발자라면 "정식" SaaS 하나를 키우는 게 정석 아닌가요? 왜 119개로 분산되었나요?

A. 첫째, 결제·세무·고객지원이 본업의 부담을 더하는 게 싫었어요. 정식 SaaS 는 한 번 결제 받기 시작하면 환불·문의·세금계산서 같은 게 다 운영자 책임이 됩니다. 본업과 가족이 우선인 시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컸어요.

둘째, 한국에는 "결제까진 필요없는데 이 작은 계산만 해주면 좋겠다" 싶은 도구가 정말 많아요. 예방접종 스케줄, 포괄임금제 유효성, 사주 풀이, 이유식 단계 같은 것들. 그 자리들을 채우는 게 더 즐거웠어요. 결제 없이 광고만 붙여도 사이트가 살아남으면 사용자에게 부담이 없고 운영자에게도 부담이 없습니다.

셋째, 분산이 위험을 줄여줘요. 한 사이트가 검색 알고리즘 변화로 사라져도, 나머지 118개가 운영을 받쳐줍니다. 2024년 9월 구글 헬프풀 콘텐츠 업데이트 때 한 사이트가 인덱스에서 사라졌을 때, 다른 100여 개가 받쳐줘서 운영자의 멘탈이 무너지지 않았어요. 한 SaaS 에 모든 걸 걸었으면 그 시기에 그만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그래도 한 번쯤 정식 SaaS 를 도전해볼 생각은요?

A. 솔직히 있습니다. 다음 1년의 목표 중 하나가 상위 5~10개 사이트를 천천히 다듬는 거고, 그중 한두 개가 결제까지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형태로 진화하면 그때는 결제·고객지원도 받아들일 수 있겠죠. 다만 처음부터 "이거 SaaS 만들 거야" 라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사용자가 알아서 "결제할 테니 이 기능 좀 더 해주세요" 하는 도구를 발견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시장이 먼저 말해주는 SaaS 와 운영자가 먼저 말한 SaaS 는 1년 뒤 생존율이 완전히 다릅니다.

Q. SaaS 가 아니라서 잃는 것은요?

A. MRR(월 반복 매출) 이 없으니 "성장 곡선" 같은 자랑할 만한 그래프는 없어요. AdSense 만으로는 의미 있는 곡선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1년 누적 USD 200~400 의 광고 수익은 사실상 0 에 가깝죠. 대신 잃는 것보다 얻은 게 분명해요. 자유, 즉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자유. 정식 SaaS 가 되면 그만두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용자에게 한 약속 때문에. 광고만 붙이는 마이크로 도구는 내일 운영자가 그만둬도 사용자에게 큰 손해가 없습니다. 이게 1인 운영자에게 가장 큰 자유입니다.

주제 3 — 가족과의 균형

Q. 첫 아이가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운영에 영향이 컸나요?

A. 2025년 5월 27일에 태어났어요. 그 후 6개월간 사이트 신규 출시가 거의 멈췄습니다. 솔직히 그 시기에는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다만 그게 "운영의 정체"라기보다 "운영자가 정상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사이트는 도구일 뿐이고, 가족은 도구가 아니니까요.

Q. 아이가 생긴 뒤 사이트의 방향이 달라졌나요?

A. 네. 2025년 후반~2026년 상반기에 출시한 도구의 한 그룹이 육아 관련입니다. 이유식 단계 안내, 영유아 발달 마일스톤, 예방접종 안내(yebang). 이건 시장 분석을 한 결과가 아니라 그냥 내가 매일 검색하던 키워드를 정리한 결과예요. 본인이 매주 쓰는 도구가 가장 좋은 도구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yebang 이 2026년 5월에 138 UV 의 작은 spike 를 낸 것도, 운영자 본인이 그 도구를 매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디테일이 채워져 있었던 게 큰 이유라고 봅니다.

Q. 아이 키우면서 사이드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A. "오늘은 코드 안 친다" 는 결정을 죄책감 없이 할 수 있어야 1년 갑니다. 이게 진심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사이드는 매일 해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세요. 1주일 1번 끝까지 가는 게, 매일 시작만 하는 것보다 훨씬 멉니다. 아이의 첫 옹알이는 다시 안 옵니다. 사이트는 1년 뒤에도 똑같이 거기 있습니다.

주제 4 — 돈

Q. 돈 얘기 솔직하게 가도 될까요. 1년 운영해서 얼마 벌었나요?

A. AdSense 첫 USD 100 지급까지 6개월 걸렸어요. 1년 누적해서 USD 200~400 사이입니다. 시간당 환산하면 시급 1,000원도 안 될 거예요. 이걸로 먹고 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본업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점은 솔직히 인정합니다.

Q. 그럼 왜 광고를 붙이세요?

A. 두 가지 이유. 첫째, 운영비(도메인·AWS) 를 사이트가 스스로 벌어야 죄책감이 줄어요. 사이트가 적자면 가족 통장에서 새는 돈이 됩니다. 그게 싫었어요. 인프라 비용 월 3~5만 원이 광고 수익 월 USD 20~40 으로 정확히 상쇄되어야 사이드가 "비용 0" 의 부담 없는 상태로 유지됩니다.

둘째, 광고가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도구의 "공식 운영" 신호가 됩니다. 사용자에게 "이거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 거야" 라는 무언의 약속이에요. 광고 없는 사이트는 사용자가 봤을 때 "이거 언제 사라질 줄 모르겠네" 라는 불안을 줍니다.

Q. AdSense 외 다른 수익은요?

A. 거의 없어요. 일부 도구에서 제휴 마케팅 링크가 있긴 한데 합쳐서 월 만 원 단위입니다. 다음 1년 안에는 한국 사용자에게 맞는 콘텐츠 구독 형태를 작게 실험해보고 싶어요. 단, 어디까지나 "실험" 이지 "본격 SaaS 화" 는 아닙니다. 도구 자체는 무료로 유지하고, 운영 회고·데이터 분석을 묶은 월간 구독 채널을 시도해 보는 정도.

주제 5 — 번아웃과 지속 가능성

Q. 1년 동안 번아웃 없었나요?

A. 두 번 있었어요. 한 번은 2025년 봄, 출시 페이스를 너무 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키보드가 무겁게 느껴졌어요. 1주일 완전히 쉬었습니다. 두 번째는 2025년 가을, 아이가 태어난 직후 잠을 못 잤던 시기. 이건 번아웃이라기보다 그냥 체력 고갈이었어요.

두 번 다 회복은 1주일 휴식이었습니다. 그 이상 깊이 가진 않았는데, 그게 "분산 119개" 구조의 안전장치였다고 생각해요. 한 사이트에 모든 걸 걸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이트가 안 되어도 다른 게 받쳐줬어요. 1주일 쉬어도 사이트가 "운영자가 사라졌다" 고 느끼지 않을 만큼 정적이라는 점이 분산형 마이크로 SaaS 의 숨겨진 장점입니다.

Q. 1년 더 지속할 수 있을까요?

A. 네, 다만 작게. 신규 119개를 더 만들 생각은 없어요. 다음 1년의 목표는 "0에서 1" 이 아니라 "1에서 1.2" 입니다. 상위 5~10개 사이트가 천천히 더 정직하게 사용자에게 닿게 다듬는 일. 신규 출시는 분기당 1~2개로 줄이고요.

Q. 그러면 119라는 숫자에서 줄어들 수도 있나요?

A. 네. 이미 8개 사이트는 GA4 셀러 11개 중 데드 상태로 분류해 noindex 처리했습니다. 노출에서 빼는 거지 도메인에서 지운 건 아닙니다. 다음 1년 안에 더 줄어들 수 있어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후퇴로 보지 않습니다. "안 만들 수 있는 것을 안 만드는" 다음 단계는 "더 안 살리는 것을 안 살리는" 입니다.

Q. 마지막.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에게 한 줄.

A. "내가 끝낼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게 1년 뒤에 가장 멀리 갑니다. 작은 것 하나를 끝까지 출시해본 사람만 그 다음 99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것 100개를 시작만 한 사람보다, 작은 것 1개를 끝낸 사람이 분명히 멀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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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에 다시 답할 질문 5가지

이 셀프 인터뷰는 운영자가 1년차의 자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들로 구성됐습니다. 다음 인터뷰는 2년차에 다시 하기로 미리 약속해 두기 위해, 그때 답하고 싶은 질문 5가지를 미리 적어둡니다.

  1. "신규 출시를 줄였더니 실제로 상위 5개의 사용자 경험이 더 정직해졌는가?"
  2. "콘텐츠 구독 실험은 어떻게 됐는가? 한국 사용자에게 통하는 가격대는 얼마였는가?"
  3. "AI 코딩 보조 도구의 다음 점프 (Claude 5, GPT-5, Cursor 후속) 가 운영 패턴을 또 한 번 바꿨는가?"
  4. "두 번째 아이 계획·실현 여부와 그것이 운영에 미친 영향"
  5. "본업·사이드 사이의 양방향 흐름이 여전히 유지되는가, 한쪽으로 기울었는가?"

셀프 인터뷰 후기 — 운영자가 운영자 자신을 인터뷰하며 알게 된 것

이 셀프 인터뷰를 적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평소에 말로 답해본 적 없는 질문에 답을 쓰려고 하니 손이 자주 멈췄다는 사실입니다. "왜 SaaS 가 아니라 마이크로 도구인가" 같은 질문은 운영을 시작한 순간부터 1년 내내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질문이었는데, 막상 답을 글로 쓰니까 그동안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갖고 있던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운영자에게 셀프 인터뷰가 주는 효과가 한 가지 분명히 있습니다. 본인에게 묻지 않으면 답이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1년 운영 동안 누적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면 그 사람이 묻는 질문에만 답했을 것이고, 운영자 본인이 진짜로 답하고 싶었던 질문은 영영 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글을 적으면서 1년 운영의 5가지 큰 주제(본업·SaaS 선택·가족·돈·번아웃) 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정리됐습니다.

또 한 가지 효과는 글을 적는 과정에서 다음 1년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진다는 점입니다. 신규 출시를 줄이고 상위 5~10개를 다듬는다는 결정은 인터뷰를 적기 전부터 있었지만, 적고 나서야 그 결정이 단지 시간 절약이 아니라 "운영자의 가치관 변화" 라는 더 큰 결정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1년차의 운영자는 "많이 만드는 사람" 이고 싶었고, 2년차의 운영자는 "잘 운영하는 사람" 이고 싶습니다. 이 변화는 인터뷰를 적기 전에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셀프 인터뷰가 다른 1인 개발자에게도 효과가 있을 거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30분만 들여서 본인에게 5가지 질문을 적어보세요. 본업과의 관계, SaaS 선택, 가족, 돈, 번아웃. 같은 5가지 질문에 1년 뒤에 다시 답을 적으면, 운영자 본인의 변화가 글로 남습니다. 이게 도구를 100개 만드는 것보다 운영의 지속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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